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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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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워홀 막차 타고 어디 가요? 지금도 정확히 답을 할 수 없다. 가정환경이었을까 몇 가지 충격적인 사건 때문일까 개인 기질의 문제였을까 한국에서 자란 게 문제였을까 여자인 게 문제였을까 성 정체성을 일찍 깨달은 게 문제였을까 하루하루를 떼어보면 딱히 나쁠 것도 없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였는데 전반적으로 불안했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나일 수는 없던 날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살아있으면 다행일 거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사랑하는 날들과 증오하는 날들이 횡과 열로 얽힌 이십구 년을 보내고 나서야 나자빠졌다. 후반 5-6년은 중증 환자가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하듯 한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스물아홉. 온전히 무너졌고, 살던 곳이 아니어야 했다. 속속들이 알아버려 희망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한국이 아니어야 했다. 그..
호주 파트너비자 신청 후 이별(+수정) Break up after applying for Australia partner visa 이건 딱 한 분을 위해 쓰는 포스팅이고, 그런 의미에서 편지예요. 누구인지 모르고, 제가 여러 가지 정보를 짜깁기해서 오해하고 있는 걸 수 있는데 지나칠 수가 없어서 그쪽한테 닿으려고 하는 거예요. 짝꿍과 호주 파트너 비자 신청을 하면서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 작년 말? 올해 초? 비교적 최근에 호주에서 남자 친구를 스폰서로 파트너 비자 신청한 한국 여성이 쓴(네이버였던 것 같은데) 비자 신청 이후에 남자 친구에 의한 성폭력이 발생했고 조언/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봤어요 몇 달 전이기도 하고, 댓글에 변호사님이 글을 남기기도 했고, 관련해 도와줄 게 마땅히 생각이 안 나서 잘 해결됐으려나, 잘 해결됐길 바라며 넘겼는데 최근에 제 블로그에 '호주 비자 헤어짐' 이런 키워드가 보여서요 혹시 그분이 아닌가 걱정이..
Your Happiness is Your Own Responsibility. 이별을 말한 것도, 견디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모두 나다. 그녀는 슬픔을 삼키는 법을 아는 사람처럼, 그래서 내 눈엔 그저 절절하게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한 적도 없는 것처럼, 이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떠날 것처럼 지내고 있었다.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밥을 삼키지 못하고, 가슴이 타는 것처럼 호닥 거림을 느끼며 집에 오자마자 눈물바람을 하는 건 나였다. 밤새ㅡ 며칠을ㅡ 오늘부터 1일이라는 설렘, 야자 시간을 째고 달려가는 순간, 용돈을 모아 산 소중한 선물, 상상만 해도 콩닥거리는 마음, 금세 달아오르는 뜨거운 숨, 네가 아니면 죽는다고 매달리던 절실함... 그 모든 게 사랑이었으나, 십 대의 날것으로 파닥거리던 욕구들, 뜨거운 것이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하고 아프던 것들, '사랑은 상대방이..
사랑과 이별의 도돌이표 헤어지는 수밖에 없는 거다. 내가 호주에 가면 이제 60대에 진입해, 코로나 지원금은 어떻게 신청하는지, 핸드폰의 기능은 어떻게 조작하는지, 같이 일하는 아줌마가 샀는데 좋다 하니 이것저것 시켜보라고 필요할 때만 연락하시는 내 부모님은 누가 돌보고, 이제 초등학생이 되어 제법 어른스러워지긴 했지만, 전화하면 "꼬모~~~!! 언제 와요~~??" 하는, 어몽어스도 같이 하고, 닌텐도 게임도 같이 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나와 참 비슷하게 생긴, 어떤 표현으로도 이 녀석들을 향한 사랑을 다 표현할 수 없는 내 조카들은 언제 다시 보냔 말이다. 잠잠하다가도 어느 날 아침 눈떠 확인하면 300+가 우스운 오랜 친구들과의 그룹채팅방에, 모두 열심히 보는 웹툰 업로드됐다고 알려주고, 풀무원 행사 쿠폰 떴으니 서둘러..
헤어지면 그만 끝나버리면 많이 아플 거란 걸 부정할 수 없는 늦은 밤. 분명 별거 아닌 걸로 투닥거리기 시작했는데 오늘도 헤어지네 마네 하며 최악을 달린다. 이럴 때는 언어장벽도 없다. 결국 누가 더 끈질기게 못되질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 같다. 요즘 문제는 그런 거였다. 한국에 들어온 지 일 년이 좀 지난 이 시점 우리는 비자를 신청하기로 했었다. 그래야 앞으로 일 년 후, 다시 호주로 가기로 한 그 시점에는 비자가 나와 함께 갈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일 년 동안 우린 제법 많이 싸웠고, 조금은 지쳐있었고, 삶은 바빠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을 시간도 빠듯했고, 주말에는 함께 낄낄거리고 놀거나, 투닥거리고 싸우느라 시간은 빠르게만 흐른 것이다. 그런데 좀처럼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지 않는 나의 ..
언제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 김기홍님을 보며, 변희수 하사를 보며... 나는 언제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 지금은 절대로 죽지 말아야지 죽어도 나를 죽이지는 말아야지 생각하는데 지금이 괜찮은 건지 아닌 건지도 모르면서 어디가 절망의 끝인 건지도 모르면서 내 삶이 어디까지 흔들릴지 모르면서... 그래도 나 여기 있다고 우리 같이 꼭 살자고... 말하고 싶다
연애? 결혼? 서른 중반, 이런 대화 - 결혼을 생각하고 만남을 갖는 건 미련한 일인가? A: 네가 결혼하고 싶은 이유는 뭐야 아니면 결혼을 생각하고 만남을 가지고 싶은 이유는 뭐야 - 난 늘 결혼이 하고싶었어, 내꺼라는 찜꽁 A: 넌 누군가를 찜꽁하면 떠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을듯 실례로 여기 찜꽁당한 두 여인이 자꾸 도망가려 하잖아 - 불안해하지 않고, 상대를 믿고, 천천히 가는 연애를 하는 건 안해봐서 그런지 너무 무서운 일이야 A: 아픈 과거를 소환해서 매우 미안한데 같이 집을 사도 깨지는게 연인이야 결혼을 했다고 다를까?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 연인과는 연애를 지속할 필요가 없다는 건 나의 좀 단편적인 생각이었음 난 그것에서 자유로웠다면 더 즐거운 연애를 했을 것 같아 결혼을 생각할까? ..
은행으로 뛰어가 돈을 보내게 만들다니, 보이스 피싱. "내 주머니에 돈 들어오기 전에 받을 게 있다고 하면 다 사기예요!" 어쩌면 순진해져 버린 걸지도 핑계부터 대야겠다. 정신 멀쩡하던 날 눈 뜨고도 코 베이듯 당했던 건 아니라고. 스물아홉이었다. 친척들이 언제 결혼할 거냐는 질문도 하지 않던 즈음.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피해자인 척하고 싶진 않지만 당시 나에게는 도피만이 살 길이었다. 한국에서 견뎠다면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모습일 수 있었을까. 어쨌든, 얼마 전까지 호주에 살았단 게 거짓말인 것처럼 벌써 아득해져 버린 시간. 돌아온 나는 서른넷이 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아 이 시간이 현실인지, 꿈인지, 취한 건지. 카레이싱을 마치고 갓 내린 것 같은, 방방을 십분 이상 타고 마른땅을 밟은 것 같은, 울렁이는 어지러움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