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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journal

언니, 워홀 막차 타고 어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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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정확히 답을 할 수 없다.

가정환경이었을까

몇 가지 충격적인 사건 때문일까

개인 기질의 문제였을까

한국에서 자란 게 문제였을까

여자인 게 문제였을까

성 정체성을 일찍 깨달은 게 문제였을까

 

하루하루를 떼어보면 딱히 나쁠 것도 없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였는데

전반적으로 불안했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나일 수는 없던 날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살아있으면 다행일 거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사랑하는 날들과 증오하는 날들이 횡과 열로 얽힌 이십구 년을 보내고 나서야 나자빠졌다.

후반 5-6년은 중증 환자가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하듯 한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스물아홉. 온전히 무너졌고, 살던 곳이 아니어야 했다. 속속들이 알아버려 희망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한국이 아니어야 했다.

그렇게 처음 해외살이를 시작한 건 벌써 7-8년 전, 2016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소위말하는 워홀 막차.

 

뉴질랜드, 캐나다 중에서 어디를 갈지 고민을 하던 나는, 일단 비자를 받고 보자는 심정으로 뉴질랜드와 캐나다 워홀비자 신청을 시기에 맞춰했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같은 날 두 나라의 워홀 인비테이션이 나왔다.

딱히 이민에 대한 계획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상대적으로 영주권이 조금은 쉽다고 들은 캐나다를 나중에 가야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9개월 간 뉴질랜드에 머물다 캐나다로 갈 계획으로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결국 지금까지도 캐나다 땅을 밟아 본 적 없다는 웃픈 이야기. 어쨌든 인생 처음 장기 해외 거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해외에서의 삶은 어렴풋한 상상보다 더 만만하지 않았다.

내 영어실력은 너무나 형편없었고, 언어, 문화 따위는 물론 공기, 햇빛까지 모든 것이 생소한 환경에서 나도 모르게 고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한 생존모드 ON이었다.

무엇보다 심하게 부서진 멘털로 한국 탈출(?)을 감행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저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버겁던 시기.  지금 보면 엄청 극단적이고 과장되게까지 들리지만 그때는 그게 진실된 목표였고 전부였다. 지금 돌아보면 뉴질랜드에 대한 구체적인 기대, 목표, 환상이 없어 어찌어찌 적응 돼버린 것이 다행이라 해야 하나.  

 

어쨌든 9개월은 흘러 캐나다 비자가 취소되기 전, 떠날 거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시기가 도래했고,

나의 스트레스 지수도 극에 달했다. 조금 안정이 되어가나 싶던 일상이 터질 듯한 머리, 쿵쾅대는 심장. 통제되지 않는 불안함에 다시 잠식당하고 있었다.

간신히 한인 잡을 구해 일을 전전하며 생존모드로 산 9개월. 어차피 재밌는 일상도, 희망찬 미래도 없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는데 왜 떠나는 게 그토록 버거웠을까.

사력을 다해 고비를 넘겼고,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뉴질랜드를 떠나 시도하고 싶은 게 있는가?

무언가를 시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잔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 공부를 해야 한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나의 선택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가진 나라가 있는가?

끝도 없는 질문.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답하려고 애쓰는 순간 불안은 찾아온다.

 

진실된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 말고는 어떤 것에도 분명하게 답 할 수 없다.]

가장 옳은 선택, 미래에 도움이 될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지지 않고 가장 솔직한 응답을 한 첫 번째 순간이 아니었을까.

나는 분명한 사실만을 근거로 가장 쉬운 선택을 했다. 뉴질랜드 잔류. 

살고 있는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데 집중했다. 많이 놀고, 먹고, 쉬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꿈을 엿봤다. 뉴질랜드가 익숙하고, 삶이 권태로워질 때까지 일상을 살았다.

 

다시 뭔가 시도할 힘이 생기기까지는 그 후로도 일 년 반이 더 걸렸다. 머리로, 생각으로 앞서 가늠하고 결정해도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단계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체감하기 시작한 삼십 대 초반. 내 삶에 중요한 것들이 추리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새롭고, 재밌고, 화려한 것보다는 익숙하고, 통제 가능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 동경보다는 존경. 비싼 것보다는 잘 만들어진 것. 말보다는 행동. 생각보다는 경험처럼...

그리고 인비테이션을 기다리지 않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바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자, 나의 성적지향이 내 삶의 장애가 되지 않는 호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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