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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퍼스) 정착기

호주 파트너 비자 받고 2년 (Subclasses 309 and 100), 영주권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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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돌아보면 짝꿍을 만나고 이런저런 일을 헤쳐가며 지나온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쉬움도 있지만 참 잘해왔다 (집을 미리 샀어야 했다는 후회 빼고 ㅋㅋ)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법을 배워가는 나이에 만났고, 여전히 그녀의 사랑에 눈물 나게 감사할 때가 많으니 이만한 축복이 또 있을까.

약 2년 전, 호주 퍼스로 이주하기로 하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 간의 한국살이를 정리했다.

대한민국에서 동성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다 보니 짝꿍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나와 함께 하는 것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중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짝꿍이 메말라 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런 짝꿍에게 자유를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호주행은 불가피했다.

물론 나이가 이만큼 차도록 한국에 콱 뿌리박고 이뤄낸 것도 없는 내 상황과,

내게 성 정체성은 평생 숨기며 살고 싶은 부분이 아니라는 확신이 호주행에 대한 결정을 가볍게 만들어 줬다.

 


 

호주에 거주할 자격을 얻기 위해 파트너 비자를 신청하는 게 급선무였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서류 심사 기간이 무기한 연장되고 있었고, 1년~2년 이상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미 호주에 있던 사람들은 소위 ’코로나 비자‘에 의존할 수 있었지만 우린 도대체 얼마나 걸릴지 참 불안하던 시기였다.
비자 신청 비용과 서류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서류를 뒷받침할 자료를 정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영어가 부족한 나 대신 짝꿍이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당연하게도 한국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온갖 증명서는 왜 다 한국어로만 기재되어 있는지. 모든 것이 장벽으로 느껴졌다.

 

성질 급하고 영어 안 되는 나의 불안함, 답답함, 짜증 섞인 감정으로 바가지를 많이도 긁었더랬다. 아직도 미안하다.

 

우여곡절 끝에 2022년 5월 서류를 제출했다.

그리고 한 달 후, Subclass 309 비자를 받았다.

 

* 참고로 호주 subclass 309 비자는 호주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신청할 수 있는 파트너비자(영주권)로 이 비자를 신청한 지 2년 후에 영주권에 해당하는 subclass 100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비자를 스폰하는 파트너와 같이 산 지 1년 이상이 되면 신청할 수 있다고 쓰여있지만 오래 장거리 연애를 해 온 국제커플도 이 비자를 신청하는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심사기간이 너무 길어진 케이스, 둘 사이에 자녀가 있는 커플, 둘의 관계가 오래된 것이 증명되는 커플은 309 비자와 100 비자가 같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비자 신청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상당히 많은데 작은 실수가 (특히 의도적인) 발견되는 경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라도 비자가 취소되는 경우가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호주행을 준비할 수 있었고 (근데 집은 왜 안 샀지? 아 못 산 거지)

한국을 떠나기 전 태국으로 해외여행도 다녀왔는데 막바지에 엄청 급하게 시간에 쫓겨 호주에 입국했다. 놀다 보면 시간이 아주 잘 간다.

 

그 후로 비자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계정이 잠겨(?) 추가로 서류를 제출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309 비자는 2년짜리 Temporary visa이지만 영주권과 비슷한 혜택이 많았기에 큰 불편함 없이 호주에 정착하기 위한 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일단, TAFE 코스도 호주 국민처럼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메디케어에도 가입할 수 있고, 일을 구하고 하는 데도 전혀 제한이 없었다.

다만 때때로 알게 된 차이점은 복지, 경제, 정치참여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복지 - 학업을 하며 지원금을 주는 프로그램에 영주권자가 아니라 해당 안됨으로 나옴

경제 - 학자금 대출 불가, 주택 구입 시 추가 세금 있음

정치참여 - 투표권이 (당연히도) 없다는 것 정도

 


 

호주 비자를 신청한 지 2년이 되기 한 달 전인 5월 초, 이메일을 하나가 도착했다.

이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으니 서류를 준비해서 subclass 309 비자를 신청하라는.

또 많은 서류를 요구하지만 처음 비자 신청할 때에 비하면 무척 간소하다, 비자 신청 비용도 처음 납부한 것으로 끝이고.

 

여전히 코로나는 돌아다니고 있지만 우리가 학교/회사로 돌아가고, 집값이 끝없이 오르고, 환율이 꾸준히 오르고 있는 것처럼

세계의 국경이 닫히고 정신없이 모르는 바이러스와 싸우던 시기가 막을 내렸나 보다. 

 

비자 심사 기간도 평균으로 돌아온 듯.

집을 샀어야 했다. 환전을 해뒀어야 했다.

 

아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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