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주(퍼스) 정착기

퍼스 게 잡기, 크게 실패하고 남기는 후기 (Mandurah crabbing)

반응형

퍼스 만두라 (Mandurah)는 서호주에서 퍼스 시티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휴양도시다.

 

https://www.mandurah.wa.gov.au/learn/about-mandurah/tourist-information

 

Tourist information

Mandurah, Western Australia’s largest regional city, is set against a backdrop of magnificent beaches and an estuary twice the size of Sydney Harbour. Less than an hour from Perth by car or train, Mandurah is an easy destination for a day trip, romantic

www.mandurah.wa.gov.au

 

만두라에 들어서면 제법 큰 도시 규모와 깨끗한 휴양지 느낌에 이미 기분이 좋아진다.

자이언트 (Giants of Mandurah),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해양생물 (특히 너무 예쁜 돌고래), 보트/유람선 타기 등 재밌는 것들이 많은데 나의 구미를 당긴 것은 블루크랩(Blue swimmer crabs) 잡기!

 


 

뭔가 재밌지만 생산적인 활동을 탐색하고 있던 차에 짝꿍 친구들이 crabbing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침 금, 토, 일 휴일이 다가와 우리도 crabbing을 떠나기로 계획하고, 만발의 준비를 시작했다.

 

- 이 후기는 실패의 기록이지만 경험이 없는 분들에겐 엄청난 약이 될 것이다 -

(결론만 보고 싶은 분은 글의 마지막으로 가세요)

 

우리가 준비한 건

수건,

수영복,

여벌옷,

헤드랜턴,

방수 가방,

갯벌용 신발,

게잡이용 스쿱,

게 담을 컨테이너,

선크림, 선글라스, 모자 등

 

열심히 자료를 조사해 위치를 선정했고, 새벽 3시 출발, 4시 30분 도착으로 계획했다.

블루크랩은 바닷물이 뭍으로 들어와 만나는 곳, 동트기 전과 해가 진 후, 그리고 간조에 가장 잘 잡힌다는 조사에 근거한 준비였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Osprey Waters Foreshore Reserve

 

 

새벽 4시 30분쯤 다리 밑에 도착해 차 문을 여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일단 바람이 심하게 불어 너무 추웠고, 썰물로 훤히 드러난 갯벌에 큰 게가 있을 거 같지 않았다.

 

 

아름다운 새벽녘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순간.

세찬 바람에 당장 철수하고 싶었지만 새벽에 일어나 준비한 게 아까워서 일단 준비한 랜턴과 장비를 가지고 갯벌로 들어갔다.

혹시 몰라 가지고 온 얇은 겨울 겉옷이 너무나 고마운 순간이었다.

 

한 남성이 다리 바로에서 그물을 던져 게를 잡고 있었는데 (참고로 던지는 그물은 불법인 지역이었음)

1인당 허용된 어획량이 10마리로 정해져 있어서인지 우리가 도착한 지 40분쯤 지났을까 금방 철수하는 걸로 보였다. 

 

그리고 대략 열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다리 중간에 있는 Mandurah Estuary Bridge Fishing Jetty에서 게망으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가져간 크랩 스쿱으로는 택도 없었다는 것

 

Crab Scoop

 

일단 게가 보여야 잡을 수 있을 텐데 바람에 흔들려 아른거리는 물속에서 게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무엇보다 갯벌에서 걷는 게 어찌나 힘든 지 게를 잡을 수 있을 만큼 깊이 들어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래저래 시도를 했지만 우리의 결론은 철수,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먹으며 재정비하기로 했다.

 


 

Crab Net이 어찌나 간절해지던지, 게 망을 준비해 오지 않은 게 한이 되는 순간. 

적절한 장비를 사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공휴일이라 가게가 열지 열지 않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짧은 쪽잠을 청하며 낚시용품 가게가 열길 기다렸지만 오전 9시가 되어가도록 끝내 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기다렸는데 호주답달까.

 

구글로 찾은 다른 낚시용품 가게에 전화를 걸어보니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치가... 우리가 끝내 피해보려던 남쪽으로 더 내려가야 했다.

스쿱으로 게를 잡기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해서도, 혹시라도 낚시용품을 구입해 크랩을 잡을 수밖에 없다면 그렇게라도 하기 위해서도, 선택지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냥 처음부터 남쪽으로 갈걸, 운전하기 싫다고 꽤 부리다 결국.......

 

낚시용품 가게에 들러 점원과 이야기를 해보니 오히려 그 근처에는 게망을 내릴 수 있는 제티(Jetty) 같은 게 없고 스쿱으로 잡는 게 낫단다. 아 이런 아이러니. 다시 운전을 해 5분도 걸리지 않는 바다로 다시 향했다.

 

우리의 두 번째 목적지는 Olive Reserve

 

 

차에서 내리자마자 스쿱으로 게를 잡기 훨~씬 더 적절한 곳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동이 튼 아침, 게를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흩어지고 있었지만 멀리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바다로 들어갔다. 

다른 몇몇 사람들은 게를 열심히 잡고 있었고, 바로 뒤따라 몇 팀이 더 도착해 게 잡기를 시작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찐득한 갯벌을 한참 들어가야 게 잡기를 시도할 수 있었는데 한 걸음을 떼면 주변 전체가 시커먼 물로 변하는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정작 게를 잡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다시 말해, 크랩 스쿱으로 게 잡으러 가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 같다. 

게를 잡는 것보다 활동 자체가 중요한, 예컨대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체험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삼십 분? 헤매기를 한참, 게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하지만 딱 봐도 127mm 미만 ㅠㅠ

사실 이 날 우리는 꽤 많은 크랩을 잡았는데, 거의 다 기준 사이즈 미달이라 방생해야 했다.
방생하면서 게가 집게발로 손바닥을 공격했고,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다 ^^;; 게의 복수.

 

호주는 자연보호에 진심인 나라로, 대충 봐주는 건 없으니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도 철수 전 관리원(ranger)을 마주쳐 크랩 사이즈를 쟀다. 엄청 많이 돌아다니고 페널티도 무지막지하니 쓸데없는 데 위험을 무릅쓰지 말자.

 

 

짝꿍이 먼저 게 잡기에 성공했다. 17.5센티도 넘는 큰 놈으로.

 

생김새나 맛이 우리나라 꽃게와 비슷한 블루크랩은 암컷은 갈색에 가깝고, 수컷은 진한 푸른색을 띠고 있다.

사진 속 크랩은 수컷이 분명하다. 전반적으로 암컷이 수컷에 비해 몸집이 좀 더 작은 것 같은데 팩트체크가 필요한 부분이고.

 

그렇게 몇 시간, 오후 1시가 되도록 하의를 다 적셔가며 열심히 잡았지만 우리의 성적은 아주 저조했다.

 

 

총 세 마리. 

 

물 밖으로 나와 정신을 차려보니 뜨거운 볕에 눈은 충혈, 몸도 너무 지쳐있었고

대낮(잠잘 시간) 돌아다니는 게도 많지 않아 게 잡기를 계속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또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고 아쉬운 마음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현지인에게 물어봤지만 게를 잡으려면 해질녘까지 기다리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혹시나 싶어 게 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봐도 게는커녕 텅 빈 통만 보일 뿐이었다. 우리 같은 뜨내기인 게 분명했다 ㅎㅎ

 

하지만, 우리가 집을 떠나 만두라로 출발한 지 이미 12시간, 다음날 일정도 있었고 공휴일(Australia Day)이라 저녁에 게 잡는 곳 근방에 불꽃놀이가 예고되어 있었기에 깊은 고민 끝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철수하기로 판단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고통에 신음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완전 타버린 내 다리. 이틀이 지난 지금도 호닥거린다. 절대로 호주의 불타는 햇볕을 얕잡아 보면 안 된다.

Slip, Slop, Slap, Seek, Slide를 다시 한번 새기며

https://www.cancer.org.au/cancer-information/causes-and-prevention/sun-safety/campaigns-and-events/slip-slop-slap-seek-slide

 

Slip, Slop, Slap, Seek, Slide

One of the most successful health campaigns in Australia's history, Sid the seagull, reminded us of 3 easy ways we can protect ourselves from skin cancer

www.cancer.org.au

 

한동안 우리가 게 잡으러 나서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평생 안 갈 것도 아니기에 오늘의 기록을 잘 남겨두기로 했다 ㅎㅎ

다음엔 꼭, 만선의 꿈을 이루리라.

 


<오늘의 교훈>

1. 크랩 스쿱 노노. 아이들과 체험 활동이 아니라면 통발을 내리는 게 현명하다

2. 게 잡이는 동트기 전, 해질녘 이후

3. 게 사이즈 규제, 낚시 장비, 금어기(9월~11월) 등을 잘 확인하고 법을 준수한다

4. 바람이 적을 때 (보름달이 뜨는 기간을 피하자, 물속이 안 보이면 잡을 수 없다), 썰물 때 게 잡기가 수월하다 (통발을 내리면 상관없다)

5. 적게 운전하는 것보다 좋은 지점에 가서 빨리 끝내는 게 낫다 (스쿱으로는 Olive reserve 보다 남쪽으로 내려가야)

6. 한여름이라도 퍼스 새벽 바닷가는 무지 춥다. 적당한 겉옷 필수!

7. 자외선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기 (선크림 전신 도포+덧바르기, 긴팔 상하의, 선글라스, 모자 등)

 

블루 크랩이 잡히는 곳

<준비물>

 

게망 이용 시: 게 망, 무게 추, 목장갑, 생닭조각, 추와 닭조각 묶을 것, 여분의 끈(깊이 내릴 수 있게), 컨테이너

스쿱 이용 시: 게 스쿱, 적절한 신발(갯벌을 가로지를 수 있는, 그리고 게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바다에 뜰 수 있는 컨테이너 및 끈, 수건, 여벌옷 등

 

공통: 모자, 선글라스, 선크림, 긴팔 상/하의, 랜턴, 게 사이즈 잴 것

 

 

즐거웠고, 힘들었다.

다시 게 잡으러 나설 용기가 생길까 ㅎㅎ

 

맛있었는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