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드디어 우리 집을 마련했다! (아직 계약서의 잉크도 마르지 않은...)
두 달 좀 넘게 집을 보고 다녔고, 그 사이에도 집값은 빠른 속도로 오르는 중이었다.
'작년에만 집을 샀어도 이렇지 않을 텐데'라는 미련하기 그지없는 후회의 말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
그걸 알면서도 불평불만 가득한 주댕이를 닫을 수 없는, 감당 안 되는 집 값.
퍼스는 지난 10년 간 집값이 큰 오름세 없이 안정적이었던 터라, 타 지역에 비해 저렴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가 지나가고 마주한 어마어마한 인플레이션, 이민자 유입, 주택 공급 부족이라는 장애물은 5억대에 머물렀던 집을 순식간에 7억-8억대로 끌어올렸다.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장에서 당장 살 곳이 필요한 사람들과 비싼 렌트비를 내는 대신 집 장만을 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저평가된 지역에 투자를 하려는 '동부 사는' 호주인들이 일제히 시장에 뛰어드니 파는 사람이 왕이고 부르는 게 가격이 됐다. 절대적인 'Seller's market'.
집을 내놓을 때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는 대신 EOI (Expression of interest)라는 타이틀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구매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얼마에 살 건지를 서면으로 제시하면 판매자가 이런저런 요소를 고려해 구매자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Set date sale도 많이 보인다. 주택 구입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구매하고자 하는 금액을 적은 계약서를 판매자에게 서면으로 제출하면 판매자가 구매자를 선택해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계약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보통은 마감기일까지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구매자가 선택된다. 금액 상위 3-4위 정도는 에이전트가 연락을 해 '지금 가격이 얼만데 (금액을 밝히기도 하고 또는 구매의사를 표시한 사람이 최고 가격이 아닌 것만 알려주기도 한다) 이것을 최종 가격으로 판매자에게 제시하면 되겠느냐'라고 묻는다. 그럼 경쟁하듯 다시 최고 가격을 경신하니 거기서 또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한국의 공인중개사와 달리 호주의 Estate Agent는 판매자로부터 모든 수수료를 받는다. 절대적으로 판매자의 편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한정된 주택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Estate Agent는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일종의 경매에 가까운, 혹은 그보다도 더한 (진짜 경매는 깔끔한 규칙이라도 있으니) 출혈이 발생하게 되는 것 같았다. 우리도 여러 번 offer를 내며 철저히 시장 경제를 경험했다. 하하...
예를 들자면,
우리가 구입하고 싶었던 집 중 하나를 통해 얻은 경험인데, 이 에이전트는 온라인 웹사이트를 이용했다. 구매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온라인 앱에 자신의 정보와 구입 가격을 등록하면 자기가 제시한 금액의 순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정해진 시간까지 가장 높은 순위에 있는 사람이 최종 구매 자격을 얻게 되는 일종의 온라인 경매 방식이었다.
에이전트는 특정 일자 저녁 9시가 정해진 마감시간이라고 했다. 우린 삼십 분 전부터 대기를 하며 본격적으로 금액을 높여 우리 순위를 2위까지 올렸다. 하지만 마감 전 한 사람이 우리와 경쟁하기 시작했고, 서로 오백만 원씩 올리기를 여러 번, 결국 우리가 1위인 채로 마감시간이라던 9시가 됐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록, 그러니까 9시 10분까지도 프로그램이 종료되지 않으면서 계속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문득 엄청나게 큰 금액을 걸고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과 정해진 규칙도, 보호장치도 없는 온라인상에서 입찰 경매를 하듯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고 멈추게 됐다. 결국 그 집을 갖지 못하게 되었지만 설사 우리가 가졌더라도 찝찝했을 거 같아 놓친 게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우리가 평생 만져본 적도 없는 큰 숫자를 가지고 도박을 하는 듯한 느낌은 절대로 즐겁지 않았다.
또 다른 경험으로,
몇 달간 본 수많은 집 중에 집 자체만 놓고 보면 제일 마음에 들었던 데가 있었다. 수요일 퇴근시간 후에 처음 하우스 오픈을 했다. 한눈에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에이전트한테 물어보니 그날이 첫 하우스 오픈이었고, 오는 주말에 한번 더 하우스 오픈을 한 후 오는 월요일에 가장 높은 구입가를 제시하는 사람에게 판매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다음날인 목요일이 되자 계약체결이 됐다는 안내가 뜬 게 아닌가. 너무 마음에 든 집이라 완전 화가 날 정도로 바람이 빠져버렸다. 이런 경우는 대개 높은 금액으로 현찰 구입하겠다는 사람이 있는 경우란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아쉽다고 한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렇게 핫한 마켓에서 집을 사야 하는 우리가 더 걱정스러워질 뿐.
이런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집을 보러 다닌 지도 두세 달, 짧다면 짧은 기간임에도 그 새 집값이 몇 천만 원, 억 소리 나게 올랐다. 아파트가 아니다 보니 입지, 주택 사이즈, 구조 등에 따라 가격이 달라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뉴스에도 집을 내놓자마자 팔리는 시장 상황이 보도될 만큼 정신없이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오히려 한눈에 마음에 들지 않았고 심지어 걸리는 구석이 몇 개 있는 집을 선택하게 됐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우리가 작성한 리스트를 가장 많이 충족시키는 집을 고르는데 중점을 뒀고,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것을 중심으로 선택했다. 결국 사긴 샀지만 상당히 찜찜하다. '너무 잘 샀다'는 생각이 들면 좋을텐데 그거랑은 거리가 멀다. 계약서에 서명한 지 한 주가 더 지나도록 머리가 어벙벙한 현실감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정말 큰 금액, 실제로는 만져보지도 못한 그 돈을 딱 한 번 보고 너무나 급하게 고른 집, 정을 붙일 새도 없었던 어떤 낯선 공간을 마련하는데 가버린다는 생각에 마음이 허전하다.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퍼스 주택가격 전망처럼 향후 2-3년은 이 공급부족이 해결되지 않아 상승세가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주택 공급이 안정되면 최소 몇천만 원에서 1억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시드니, 멜버른 등 대도시의 규모에 비교조차 되지 않는 이 땅에서 순식간에 올라버린 금액은 결코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금액은 대체 몇 년을 모아야 하는 금액인지 생각하기도 싫다. 복잡한 마음과 부정적인 생각들.
그래도 집이라는 게 어차피 팔지 않으면 가격이란 것에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도 다 집 값 깔고 앉아 높은 GDP로 좋은 나라인 척하는 거지 청년 실업률, 자영업자 비율, 노인빈곤율 최고지 않은가.
이제 겨우 우리만의 집,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 거니까, 아끼고 관리하고 그리고 집을 예쁘게 하는데 투자해 가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려고 노력 중이다. 자본주의에선 루저 마인드인 거 같지만 우리에게 집은 우리가 행복하게,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이란 게 가장 중요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감사한 것만 생각하며, 매 순간 :)
이렇게 또 한 챕터를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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