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장만하면 빨리 정리하고 입주하는 게 보통일 텐데 들어갈 집을 이리보고 저리 봐도 상당히 막막한 상황. 청소가 안 돼서 전체적으로 지저분한 탓에 더 그런지 모르겠지만 눈을 게슴츠레 뜨고 흐리게 보려 노력해도 거슬리는 것들을 묵인하기 힘들다.
매번 먼저 드는 생각은
‘어쩌자고 이런 집을 샀지?‘ 이지만
백번을 되물어도 시간을 돌릴 수는 없는 법.
입주 전에 꼭 해야겠다 싶은 home renovations를 정리한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닥 줄눈.


호주의 흔한 다른 집들처럼 kitchen, dining room이 타일 바닥으로 돼있다. 타일이 옛날 스타일인 건 그렇다 치고 줄눈이 너무 시커멓고 세월에 패인 곳이 많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복도부터 이어지는 타일이라 그냥 깨끗하게 청소만 해서 될 상태가 아니다. 줄눈 수선 방법을 찾아본다. 이미 있는 줄눈에 색을 입히는 펜부터 여러 방법이 있는 거 같은데 다양한 방법만큼이나 다양한 실패 사례와 시간이 가면 번지고 티 난다는 아쉬운 후기가 많다. 역시 수선은 정석대로. 안 하면 말지 눈 가리고 아웅 하고 후회하지는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모르면 용감하다.
영어로 줄눈을 grout라고 한다는 걸 배웠다. 내가 해야 하는 건 Regrouting. 방법을 검색한다. 줄눈을 파내고 새 시멘트를 채워 넣는 게 정석이라고 한다.
호주에서는 인건비가 들어가는 것이라면 한국에 비해 기본적으로 3-4배가 비싸다. 타일은 노동+기술의 영역이기에 더 비쌀 거라 짐작하고 아예 알아보지도 않았다.
블로그 + 유튜브를 보니 내가 직접 해도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크나큰 착각이었지만 이때만 해도 열정이 가득했다.
검색해 본 바로는 멀티툴(oscillating multi tool) 같은 장비가 있으면 훨씬 수월한 것 같아 장비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요런 거.
호주는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많아 수선/수리가 일상적이다. 반면 인건비는 매우 비싸다. 그래서인지 Bunnings라는 생활 공구/자재 같은 걸 파는 대형 마트가 잘 돼있다. DIY가 생활인 나라랄까.
버닝스에서 멀티툴을 샀다. 그라우팅에만 필요한 장비에 들어가는 돈을 최소화하고자 멀티툴과 utility knife만 샀다.
장갑, 마스크, safety glasses도 준비하고 집에 있던 청소기를 챙겼다.
드디어 작업 시작.
툴에 작은 톱날 같은 걸 끼우고 바닥의 줄눈에 갖다 대면 드르륵 엄청 큰 소리와 함께 비교적 쉽게 갈리는 거 같았다. 십분 정도는 재밌었고 한 시간 정도는 할만한 것 같았다.
음 웬걸. 아파오는 허리를 느끼며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갈리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 거 같아 살펴보니 날카롭던 날이 다 닳아버렸다.
일보 후퇴. 장비가 딸린다.
버닝에서 그라우팅 전용 날을 찾았다. 무슨 전용 날 하나가 멀티툴 절반 가격이다.



바닥 줄눈이다 보니 줄눈이 5mm 이상이라 두꺼운 날을 구입하고 싶었는데 줄눈이 좁은 곳도 있어서 3mm로 샀다.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비싸도 확실히 강력하긴 하다.
장비를 보완해 갈아내기를 몇 시간.
멀티툴로 줄눈 가운데만 갈면 되는 게 아니더라는. 타일에 붙은 부분을 타일 손상 없이 제거해야 해서 유틸리티 나이프로 한 번씩 더 긁어줬다. 이때 쓰는 공구가 따로 있는데 굳이 사지 않았더니 품이 몇 배로 든다.
점점 아파오는 허리, 목, 무릎… 반도 안 했는데… 눙무리…
시간은 시간대로, 노동은 노동대로, 먼지는 먼지대로
과하게 힘들다…

1.5명이서 작업시간만 쳐도 10시간은 걸린 거 같다.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셨더랬다.
돈 공으로 버는 거 아니니 몸 아끼고 돈을 쓰라고.
ㅋㅋㅋㅋㅋ
일 끝나고 가서 밤 열 시까지 그라우트 제거하다 죽을 뻔
ㅜㅜ
청소기로 먼지 제거하며 일하고 있는데
거의 끝이 보여갈 때쯤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작동했다.
놀라서 무슨 일인지 살펴보니 시멘트 가루가 가득 찬 청소기에서 가루가 뿜어져 나와 공간을 가득 메운 게 아닌가.


노노노…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리그라우팅의 기억.
빗자루 같은 걸로 먼지를 제거하고 나머지만 청소기로 빨아들였어야 했다… 크크크…
그라우트를 크게 두 종류로 sanded grout와 unsanded grout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sanded는 말 그대로 모래가 섞인, 줄눈이 넓거나 (3mm 이상) 바닥처럼 쉽게 손상될 수 있는데 쓰는 강력한 녀석이고 unsanded는 그 외 보통 타일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매끈한 줄눈을 생각하면 된다.
당연하게도 우리 집 바닥은 제거하기 힘든 것으로 악명 높은 SANDED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하하하.

처참한 칼날의 흔적
어쨌든 끝내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몸뚱이는 휴식을 원하는 데 갈길이 참으로 멀구나…
비용은
멀티툴 AUD 170 + 멀티툴 베터리 및 충전기 150 + 공구 칼과 여분의 날 20 + 그라우팅 전용 날 55 = AUD 395
생각보다 많이 들었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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