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에서 한식 재료를 구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서울 도심에 가면 어느 편의점에 들어가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아이템이 지방에 가면 구하기 어려운 희귀 아이템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퍼스는 인구 규모로 볼 때 시드니와 멜버른과는 차원이 다른 지방이 맞는 거 같다. 특히 내가 있는 퍼스 북쪽은 더 심한 편이다.
여하튼 한국 휴가 가기 전부터 그리웠던, 그런데 끝내 먹고 오지 못한 알탕이 계속 생각난 지 몇 달. 시티에 있는 한식당에 가서 먹어봐도 그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비교적 아시안 인구가 많고 그만큼 좀 더 다양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퍼스 남쪽에 가게 된 주말, 한인마트에 들러 명태알과 곤이 같은 걸 사고 싶었는데 (곤이는 찾을 수 없었음) 우연히 들른 로컬 생선가게에서 진공포장된 크고 실한 생선알을 마주했다. 가게 주인아저씨가 생선 알은 클수록 맛있다고 하셔서 일단 믿고 샀다. 아저씨가 직접 손질한 생선알이기도 하고. 어떤 식재료든 신선한 게 최고인 건 말할 것도 없으니 말이다.
바로 여기 redfin에서


아저씨 말씀으론 mullet의 알이 최고라고. 그런데 넘 비싸서 알탕감으론 좀 아까운 듯. 나도 이거 안 삼.
집에 와서 한 뚝배기 끓여본 알탕이 어찌나 맛있던지 숨도 안 쉬고 완탕 했다. 간장에 고추냉이 탄 소스에 알을 콕 찍어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끝내 남은 아쉬움은 야채의 공백이었다.
무는 생선가게 옆 가게에서 괜찮은 것으로 사서 그나마 위안이 됐지만 쑥갓, 콩나물 같이 음식의 식감과 향을 완성할 부재료는 아직 퍼스에서 본 적이 없다.
생선가게 옆에 있는 슈퍼에서 한국 무를 살 수 있다. 그 옆에는 한인마트도 있음.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나는 콩나물을 길러보기로 했다.
아시안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soybean을 한 봉지 사 왔다 5-6불 정도 했다. 인도산인 거 같은데 호주에서는 재포장한 농산물의 생산지를 적을 의무가 없는 거 같다. 보완해야 할 제도인 듯.
콩을 씻어 물에 6-7시간 정도 불리니 이미 싹이 나기 시작한 콩들이 보였다.

아직 콩이 자리를 잡은 상태가 아니어서 물을 주거나 할 때 콩이 움직이는데 그러면 막 싹 나기 시작한 부분이 엄청 쉽게 탈락된다. 그리고 썩어버리는 콩의 일부가 된다.

빛이 차단되도록 플라스틱 뚜껑을 덮어 이틀정도 자라 이렇게 꼬불한 꼬리를 갖게 됐다.

콩나물이 자라면서 생기는 뿌리가 물에 많이 노출될수록 (혹은 접촉되어 있으면) 콩나물의 생장도 좋아지고 잔뿌리가 많이 나지 않아 먹기도 좋다.
콩나물을 키울 때 햇빛을 차단해야 하는 건 알았지만 신기하게도 이 콩나물 대가리는 형광등 빛에 조차 금방 반응해 녹색 톤을 띄었다.
콩나물을 얹어둔(?) 채반의 구멍이 크지 않아 콩나물이 뿌리를 물 쪽으로 내리는 게 불가능해 보였고 이렇게 둔지 사흘이 지나가면서 본격적으로 썩기 시작한 콩이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살아남은 콩만 손으로 하나씩 건져 뿌리가 물에 닿을 수 있게 해 주니 쑥쑥 자랐다. 그 와중에도 썩어가는 대가리는 계속 생겨났다.


콩나물 재배를 세 번 시도했는데 각각 다른 환경을 만들어 봤다. 두 번은 물에서 기르고 한 번은 흙을 이용했다. 결론적으로 발아율이나 생장속도는 비슷했고, 콩나물의 품질은 물에서 자란 게 더 좋았다.
적절한 재배 시설이 있으면 훨씬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물이든 흙이든 썩는 콩의 비율이 높고 그럼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어 또 심어 보게 될지 모르겠다…
정리>
Soy bean을 3시간~6시간 물에 불린 후 물이나 흙을 이용해 기르면 5일 정도만에 콩나물을 수확할 수 있다.
처음에 콩을 불릴 때부터 콩이 움직이지 않도록 배치해야 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난 새싹이 손상되기 쉽고 싹을 잃은 콩은 썩기 시작한다.
콩은 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뿌리가 물에 많이 노출될수록 생장이 빠르고 품질이 좋은 콩나물이 된다. 물에서 자란 콩나물과 흙에서 자란 콩나물을 비교할 때 흙 콩나물이 더 잔뿌리가 많다.
기본적으로 품질 좋은 콩을 찾을 수 있다면 발아율이 훨씬 높아지고 건강한 콩나물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인도산 콩은 30%도 건지기 힘들었다.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콩이 썩으면서 풍기는 악취가 상당해서 매일 물을 갈아주며 관리해야 한다. 이 때문에 호주에서 내가 또 콩나물을 기르게 된다면 흙을 쓸 거 같다. 담에 한국 가면 콩 사 와야지 ㅠㅠ
어찌 됐든 그렇게 수확한 진짜 한 줌도 안 되는 콩나물로

알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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