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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생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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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늦은 저녁을 먹은 날이다.

운동도 하지 않고 나른한 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동네 마실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제법 따뜻해진 밤거리를, 그래도 차가운 공기가 남아있는 거리를 걷는다는 건 즐겁고 로맨틱한 일이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십 분쯤 걸었을까, 운전해서 지나칠 때는 잘 보이지 않던 사각형의 구조물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곳이다.

운전해서 지나칠 땐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마치 고래의 갈비뼈를 통과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게 이어진 터널 같은 곳.

그 안으로 들어서자 저 멀리 큰 상자 같은, 검은 물체가 보였다.

다가갈수록 선명해지는, 웅크리고 있는 작은 고양이.

그래, 너를 보았다.

 

헤헤, 통통한 고양이다. 동네 고양이를 알아가는 것만큼 재밌는 산책길이 또 있을까 하며 다가갔다.

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너에게 가는 내 걸음은 느려졌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사람이 다가가도 가만히 있는 길고양이의 낯섦은 내 본능이 먼저 알아차렸다.

 

어중간한 거리에서 너의 상태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살며시 거리를 좁혀가고, 그는 플래시를 터트려 사진을 찍었다.

그가 말했다.

고양이가 피를 흘리고 있어

 

검은 털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바닥에도 두어 방울의 피가 떨어져 있었다.

얼마나 많이 다쳤으면 사람이 다가오는데도 자리를 피할 수 없는 걸까.

 

너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쌕- 쌕- 힘겨운 숨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시골에 가까운 면소재지다. 24시간 동물 병원이 있을 리 없다.

어디로 가야 하지?

두 마리의 고양이랑 살아본 바였다.

현실적인 질문도 금세 따라왔다.

아니, 나는 어마어마할 병원비를 감당할 마음의 준비는 되었는가?

 

갈팡질팡 복잡한 마음에 답을 못하고 있는 내 속도 모른 채 그는 물었다.

주변에 병원 없어?

전화라도 해서 물어보면 어때?

 

24시라고 명시되어있는 병원 중에 가장 가까운 곳을 골랐다.

전화를 걸었다.

살릴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데려오라고 하면 가야겠지?...

 

딸깍,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여기는 강릉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면소재지인데요 산책하다 길냥이를 봤어요

교통사고인지는 확인이 안 되는데 고양이가 많이 다친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 좀 구할 수 있을까 해서요

 

육안으로 보지 않고 말하긴 어렵지만 상태가 어떤 것 같냐고 물었다.

왼쪽 얼굴에서 피가 나고, 코에서도 피가 나는 걸로 봐서 크게 다친 것 같다고 했다.

수의사로 짐작되는 그분은 낮은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코에서 피가 나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조금 전에도 어떤 이가 사고 난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왔는데 오던 중에 떠나버렸다고 했다.

코에서 피가 나는 건 심각한 손상일 거라고... 수액을 맞추고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연명치료는 내게 사고가 나도 원하지 않는 한 가진데..

고양이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지고 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 주면 좋을까요? 따뜻하게 해 주면 도움이 될까요?

 

아무것도 의미 없을 거라고, 지켜보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너에게 다가갔다. 너는 마지막 힘을 다해 나를 피했다.

살건가? 살아줄 건가? 하는 희망이 스쳤지만 

너는 멀리 가지 못하고 어두운 그림자 아래 웅크렸다.

 

나는 멀리서 지켜보다 돌아섰다.

무겁고 무거운 걸음을 떼 집으로 향했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고양이는 마지막 순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길고양이의 사체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나는 이 고양이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돼

가장 편안한 곳을 찾아

몸을 숨기고 편안하게 떠나렴

 

눈물이 났다.

고양이가 불쌍했다.

너무 불쌍했다.

그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처음에는 가슴이 아파서 울었는데,

그다음에는 내 고양이들 생각이 났다.

집을 나가 돌아오지 못한 채 사라진 녀석들...

더 크게 울었다.

 

나는 너를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쓴다.

다른 걸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해서 그냥 쓴다.

 

고통이 짧았길, 편안하게 떠났길 바란다.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했다.

그래도 내 눈에 띄어줘서

울어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흰 털과 검은 털을 입고 예쁘게 다녀간 너를 만나

잠깐이나마 반가웠고, 안타까웠다.

 

너를 보며 미어진 내 가슴은

내 고양이들이 어떻게 떠났을지 모르는 나의 괴로움과 떼어 생각할 수 없지만

너 역시 너로 누군가에게 무엇이었다가 가는 걸 테지

 

 

 

너희들.. 아마 이 세상에 없겠지?

내 꿈에 와서 그토록 생생하게, 행복하게 놀아줬던 그 날

너희들이 이 세상을 떠난 게 아닐까 생각해.

 

고통 없이 갔니?

배가 많이 고팠니?

 

내 새끼들...

나중에 나중에 별이 되어 만날 때까지

기억하고 사랑할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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